(컬럼) 나를 잃어가는 병, 치매 (2)
치매는 대부분 치료와 진행속도를 늦추기가 어려운 비가역성 질병이기에 초기 진단과 예방이 매우 중요하지만 치매의 초기 진단은 매우 어렵다.
초기에는 뇌기능장애가 미미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이고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도 알아차리기 힘들며 의사마저도 특별히 치매를 의심하고 자세한 진찰을 하지 않고서는 알아내기가 힘들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기억력이 퇴화한다는 선입견과 치매는 발견되어도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는 인식 또한 치료를 통한 치매증상의 지연과 호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치매환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는 인지적 손상이 가속화되지만 적절한 지적 자극을 통해 인지 기능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인지적 손상이 지연되거나 완화된다는 많은 연구보고가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치매치료에는 약물치료와 별도로 작업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원예치료 등 심리적 안정과 두뇌활동에 도움을 주는 치료법이 병행되고 있다.
치매 환자들이 보이는 인지적 손상의 속도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즉 계속적인 정서자극과 다양한 감정 체험은 치매 증상의 악화를 방지하거나 지연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므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이해, 배려가 필요하다.
치매 환자를 가정에서 직접 간호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더구나 환자를 수발하는 사람이 고령의 배우자일 경우에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치매 환자는 정상인보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화를 심하게 내거나 공격적이거나 때로는 우울해지기도 하는 등 괴팍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는 뇌의 이상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치매로 인한 기억력 감퇴 같은 증상과 자신의 처지에 따른 두려움, 공포, 갑갑함과 같은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다. 치매환자를 간병할 때는 먼저 환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매환자의 간병을 위해선 먼저 치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알아두어야 한다. 치매의 주된 증상과 경과, 치료방법, 간병시 주의점 등 치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효과적으로 간병할 수 있으며 극심한 간병의 스트레스를 떨쳐버릴 수 있다. 그래야 환자가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치매환자는 ‘치매’라는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로 보아야 한다. 환자의 이상증상을 결코 진심에서 우러나온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자상한 부모님의 모습을 기대하면 할수록 분노와 실망감, 죄책감 등이 쌓여 결국 간병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급기야 환자에게 핀잔을 주거나 화를 내게 되고 심한 경우, 노인학대로 이어지거나 환자와 간병인 모두 돌이키지 못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치매 환자 간병시에 느끼게 되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간병인은 그러한 감정을 주변에 솔직히 고백하고 불필요하게 자신을 책망할 필요가 없다.
치매는 장기치료를 요하는 질병이며 치매 간병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므로 가족들이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매환자의 간병책임을 서로 미루거나 간병을 소홀히 하여 가족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겪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관자재 병원에도 그런 풍파를 겪고나서야 어르신을 입원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치매 환자를 가정에서 간병할 여건이 안 되거나 증세가 심한 경우에는 치료시설에 입원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자식된 도리로 치매에 걸린 부모를 치료시설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것을 마치 ‘현대판 고려장’을 행하는 것 같은 죄책감에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장기간 간병으로 가족간 갈등과 환자의 질병을 심화시켜 환자나 가족 모두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것보다는 병원에서의 효과적인 간호와 치료가 모두를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